연말이 되면 이상하게 영화 고르는 기준이 바뀝니다. 평소엔 자극적인 스릴러나 화려한 액션을 찾다가도, 12월 마지막 주가 되면 괜히 마음이 말랑해지는 작품에 손이 가더라고요. 한 해 동안 정신없이 달려온 사람일수록 그런 것 같습니다. 거창한 반전보다는, 보고 나면 옆 사람한테 연락 한 번 하고 싶어지는 그런 영화 말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한 해를 마무리하며 보기 좋은 따뜻한 영화’만 추려봤습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 물씬 나는 작품부터, 계절이나 명절과 상관없이 마음을 데워주는 잔잔한 작품까지 섞었습니다. 혼자 이불 속에서 볼 영화, 연인이랑 같이 볼 영화, 부모님이랑 거실에서 틀어놓을 영화를 각각 나눠 담았으니 상황에 맞게 골라보세요.
평점이나 연도 같은 정보는 전부 TMDB 기준으로 확인했고, 어디서 볼 수 있는지는 작품마다 짧게 적어뒀습니다. 이 글을 쓰는 편집자 R도 매년 12월이면 다시 꺼내 보는 영화들이라, 솔직하게 누구한테 맞고 누구한테는 좀 심심할 수 있는지까지 적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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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영화 고르는 기준부터 정리하면
연말 영화라고 무조건 크리스마스 배경일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기준은 딱 두 가지입니다. 첫째, 보고 나서 마음이 무겁지 않을 것. 둘째, ‘올 한 해도 그럭저럭 괜찮았다’는 기분이 살짝이라도 들 것. 이 두 가지만 충족하면 시대극이든 애니메이션이든 다 연말 영화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목록은 크게 세 갈래로 나눴습니다. 연인이나 친구랑 같이 보기 좋은 로맨스 계열, 가족이 거실에 둘러앉아 보기 좋은 따뜻한 애니메이션·동화 계열, 그리고 혼자 조용히 한 해를 곱씹기 좋은 잔잔한 계열입니다. 아래에서 한 편씩 보면서, ‘나는 올해 어떤 마무리를 하고 싶은가’를 기준으로 골라보면 실패가 적습니다. 무드가 안 맞는 영화를 틀면 연말 밤이 더 허전해지거든요.
어바웃 타임 — 시간 여행으로 결국 하는 말이 ‘오늘을 살아라’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2013년 작품입니다. TMDB 평점이 7.9에 평가 수가 9천 건을 넘는데, 이 장르치고는 상당히 높은 숫자입니다. 도널 글리슨과 레이첼 맥아담스가 주연이고, 시간을 되감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제목만 보면 SF 같지만 실제로는 가족과 일상에 관한 영화입니다. 시간 여행이라는 설정을 거창한 사건에 쓰는 게 아니라, 아버지와 한 번 더 산책하고 평범한 하루를 다시 사는 데 씁니다. 후반부에 빌 나이가 연기하는 아버지와의 장면이 나오는데, 연말에 부모님 생각이 나는 분이라면 여기서 마음이 한 번 출렁입니다. 연인이나 부부가 같이 보기 좋고, 혼자 봐도 좋습니다. 다만 사건 위주의 빠른 전개를 좋아하는 분에게는 잔잔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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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액츄얼리 — 연말 분위기의 교과서 같은 영화
역시 리처드 커티스 감독 작품이고, 2003년에 나왔습니다. TMDB 평점 7.1에 평가 수가 7천 건이 넘습니다. 휴 그랜트, 앨런 릭먼, 엠마 톰슨, 리암 니슨까지 출연진이 정말 화려합니다. 크리스마스를 5주 앞둔 런던을 배경으로 여러 커플의 이야기가 동시에 흘러갑니다.
이 영화는 사실상 연말 영화의 분위기를 만든 작품 중 하나입니다. 옴니버스 구조라 어떤 에피소드는 깔깔 웃기고 어떤 에피소드는 짠합니다. 모든 이야기가 행복하게 끝나는 건 아니라서, 마냥 달달하기만 한 영화를 기대하면 살짝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공항 시퀀스를 보고 나면 올해 못 본 사람한테 연락하고 싶어집니다. 연인·친구와 같이 보기 좋고, 영어권 크리스마스 정서를 좋아하는 분에게 특히 잘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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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스 — 가족이 다 같이 봐도 어른이 더 우는 애니메이션
2019년 넷플릭스 애니메이션이고, 이 목록에서 TMDB 평점이 가장 높습니다. 무려 8.2에 평가 수도 4천 건을 넘습니다. 세르히오 파블로스 감독 작품이고, 제이슨 슈워츠먼과 J.K. 시몬스가 목소리를 맡았습니다. 산타클로스가 어떻게 탄생했는가를 새로 상상해낸 이야기입니다.
손으로 그린 듯한 작화에 빛 표현을 입힌 비주얼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진짜 무기는 이야기입니다. 이기적인 우편배달부가 외딴 마을에서 친절이 어떻게 또 다른 친절을 부르는지 깨닫는 과정인데, ‘작은 선의가 퍼져나간다’는 메시지를 유치하지 않게 풀어냅니다. 아이와 같이 봐도 좋지만, 정작 후반부에 어른이 더 먹먹해집니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어서 가족이 거실에 모여 틀기에 딱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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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딩턴 2 — 평점으로 증명된 ‘착한 영화’의 정석
폴 킹 감독의 2017년 작품으로 TMDB 평점 7.5입니다. 벤 위쇼가 목소리를 맡은 곰 패딩턴이 주인공이고, 샐리 호킨스와 휴 보네빌이 가족으로 나옵니다. 런던에 사는 작은 곰이 사랑하는 아주머니의 생일 선물을 마련하려다 누명을 쓰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가 특별한 건, 끝까지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풀어간다는 점입니다. 악당조차 결국엔 품어주는 결말이라, 연말에 마음이 까칠해진 분이 보면 묘하게 위로가 됩니다. 유머가 어린아이용처럼 보여도 디테일이 촘촘해서 어른이 봐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온 가족이 같이 보기에 가장 무난한 선택입니다. 단, 자극적인 전개나 반전을 좋아하는 분에게는 너무 순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게 이 영화의 의도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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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8월의 크리스마스 — 한국 영화로 차분하게 마무리
외국 영화의 크리스마스 정서가 좀 멀게 느껴진다면, 한국 영화 두 편을 추천합니다. 먼저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2018, TMDB 7.6)입니다. 김태리, 문소리, 류준열이 출연하고, 도시에서 지친 청년이 고향에 내려와 제철 음식을 해 먹으며 사계절을 보내는 이야기입니다. 사건이라 할 게 거의 없는데도 음식과 풍경만으로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한 해를 조용히 정리하고 싶은 분, 혼자 보는 연말 밤에 잘 맞습니다.
두 번째는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1998, TMDB 7.7)입니다. 한석규와 심은하가 주연인 한국 멜로의 고전입니다. 제목에 크리스마스가 들어가지만 화려한 연말 영화는 아니고, 시한부 사진관 주인의 담담한 사랑을 그립니다. 절제된 감정선이 오히려 오래 남아서, 나이가 들수록 다시 보게 되는 작품입니다. 두 편 다 OTT 제공 여부는 시점에 따라 바뀌니 보시는 플랫폼에서 검색해 확인하는 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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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별로 한 편만 고른다면
여섯 편을 다 보긴 어려우니 상황별로 정리해드리겠습니다. 연인이나 부부와 같이 본다면 어바웃 타임이나 러브 액츄얼리가 무난합니다. 한 해 동안 같이 고생한 서로한테 고마운 마음이 드는 영화들이거든요. 아이가 있는 가족이라면 넷플릭스에 있는 클라우스나 패딩턴 2를 거실에 틀어두면 됩니다. 둘 다 어른이 봐도 시간이 안 아깝습니다.
혼자 조용히 올해를 곱씹고 싶다면 리틀 포레스트나 8월의 크리스마스를 권합니다. 시끌벅적한 연말 분위기에 오히려 지친 분에게 이 두 편이 잘 듣습니다. 평점만 보고 한 편을 고른다면 8.2짜리 클라우스가 가장 안전한 선택이지만, 무드가 안 맞으면 평점이 높아도 와닿지 않으니 위에서 적은 ‘누구에게 맞나’를 먼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연말 영화의 핵심은 화려함이 아니라 ‘마무리하는 기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고른 여섯 편은 전부 보고 나서 마음이 가벼워지는 작품들이고, 평점과 출연진도 TMDB 기준으로 확인했으니 안심하고 골라보셔도 됩니다. 어바웃 타임으로 가족 생각을, 클라우스와 패딩턴 2로 가족과 함께, 리틀 포레스트와 8월의 크리스마스로 혼자만의 정리를 해보시면 12월 밤이 한결 따뜻해집니다.
한 해를 정리한 뒤 새해 볼 작품을 찾고 있다면, 다음에는 신작 위주의 추천 글로 이어가 보세요. 계절·상황별로 무드에 맞는 영화를 계속 정리하고 있으니, 비 오는 날이나 OTT 조합이 고민될 때도 관련 글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올 한 해도 고생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