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7년 청령포, 조선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왕으로 꼽히는 단종이 유배된 그 땅에서 한 마을 이장이 스스로 자기 마을을 유배지로 내어 줍니다. 왕이 온다고 무언가 달라지리라는 기대 때문이 아니라, 그저 어린 왕 곁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마음에서입니다. 역사를 잘 몰라도 왕과 사는 남자에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이 설정 하나로 영화는 2026년 한국 박스오피스를 완전히 뒤흔들었습니다.
개봉 46일 만인 3월 6일 천만 관객을 넘어섰고, 2026년 3월 22일 현재 1444만 관객을 기록하며 역대 한국 박스오피스 3위에 올랐습니다. 장항준 감독이 연출하고 유해진과 박지훈이 주연을 맡았으며, 관객 평점 9.0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역사 드라마가 이토록 폭발적인 반응을 얻는 일은 흔하지 않습니다.
한 줄 결론 역사 드라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더라도 볼 이유는 충분합니다. 유배지에서 펼쳐지는 위로의 이야기이고, 그 위로가 생각보다 큰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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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3위라는 기록은 어떤 의미일까?
역대 한국 박스오피스 순위는 순위만 봐서는 그 의미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인구, 극장 접근성, 개봉 당시 경쟁작 구도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왕과 사는 남자가 3위에 올랐다는 것은 분명한 성과입니다.
순위
작품
누적 관객
1위
극한직업
1626만
2위
명량
1761만
3위
왕과 사는 남자
1444만+ (2026.03.22 기준)
4위
신과함께-죄와벌
1441만
2월 4일에 개봉해 3월 6일 천만을 돌파하기까지 46일이 걸렸습니다. 역대 천만 영화 가운데 중간 정도의 속도이지만, 2월 초라는 비수기에 개봉한 점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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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라는 공간은 왜 신선하게 다가올까?
단종의 유배 이야기는 그동안 여러 차례 다뤄졌지만, 이 영화는 접근 방식이 다릅니다. 권력자들의 정치 싸움을 따라가는 대신 유배지 마을 사람들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 갑니다. 이야기는 마을 이장(유해진)이 스스로 나서서 어린 왕의 유배지를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됩니다.
청령포는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실제로 단종이 유배되었던 장소이며 지금도 강원도 영월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이 공간에서 왕과 평민은 같은 땅을 밟고 같은 밥을 먹으며 계절을 함께 견딥니다. 그 일상 속에서 조금씩 관계가 쌓여 가는 것이 이 영화의 뼈대입니다.
"어린 왕 옆에 아무도 없을 거 아닙니까. 우리가 있으면 됩니다." | 극 중 엄흥도(유해진)
이 대사에 영화의 방향이 담겨 있습니다. 정치적인 복위 시도가 아니라 그저 곁에 있겠다는 선택이고, 영화는 그 단순한 선택이 지닌 무게를 2시간 넘게 차곡차곡 쌓아 올립니다.
유해진과 박지훈의 조합은 왜 잘 어울릴까?
유해진은 이미 여러 차례 실력을 증명한 배우입니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조연부터 베테랑, 택시운전사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 왔습니다. 이번 영화에서는 무게감과 유머를 함께 이끌어야 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유해진이 연기한 엄흥도는 영리하지도 특별히 용감하지도 않지만 사람에 대한 의리만큼은 있는 인물로, 유해진이 오랫동안 연기해 온 캐릭터와 닮아 있습니다.
박지훈의 경우는 다릅니다. 아이돌 출신 배우가 사극에서 폐위된 왕을 연기한다는 소식에 처음에는 물음표가 붙었지만, 관객 반응을 보면 기우였습니다. 어리고 겁먹은 왕이 조금씩 사람을 믿어 가는 변화를 박지훈이 눈빛과 태도로 잘 잡아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다른 출연진도 만만치 않습니다. 유지태, 전미도, 김민, 박지환, 이준혁, 안재홍까지 이름만 들어도 저마다 한 장면씩 책임질 수 있는 배우들입니다. 장항준 감독이 배우들을 모아 앙상블을 만드는 데 강하다는 점은 이전 작품들에서도 확인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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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취향의 관객에게 맞을까?
모든 천만 영화가 모든 사람에게 맞지는 않습니다. 먼저 이 영화를 보면 좋을 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역사 드라마를 좋아하지만 정치극은 지겨운 사람 | 권력 암투보다 관계를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가족 혹은 부부 동반 관람을 원하는 사람 | 취향을 크게 타지 않는 감정선을 지녔습니다.
유해진 팬 | 이 배우가 화면을 꽉 채우는 영화입니다.
2시간 넘는 영화를 부담 없이 보고 싶은 사람 | 속도감이 일정하게 유지됩니다.
최근 한국 영화에 실망한 사람 | 연출 완성도가 안정적이라는 평이 많습니다.
반대로 이런 기대를 품고 본다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액션이나 반전 중심의 긴장감을 원한다면 이 영화는 맞지 않습니다.
단종의 복위 시도나 사육신 관련 역사를 기대한다면, 이야기는 청령포 유배 기간에만 집중합니다.
코미디 색이 강했던 장항준 감독의 전작 스타일을 기대한다면, 이번 작품은 무게가 더 실려 있습니다.
장항준 감독은 웃음과 비극의 균형을 어떻게 잡았을까?
장항준 감독은 늘 비극적인 소재에 유머를 섞어 왔고, 이번 영화도 그 방식을 이어 갑니다. 단종의 유배와 죽음이라는 역사를 이미 아는 관객이 보더라도 마냥 무겁지만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엄흥도와 마을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장면들이 감정의 완충 역할을 해 줍니다.
그러면서도 진지해야 할 순간은 놓치지 않습니다. 왕과 평민 사이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지는 장면들, 마을 사람들이 어린 왕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 같은 디테일을 통해 감정을 쌓아 갑니다. 대사 한 줄에 지나치게 기대지 않고 상황으로 보여 주는 방식입니다.
전체적인 리듬은 요즘 한국 영화보다 느린 편입니다. 이를 단점으로 볼 수도 있고 영화의 의도로 볼 수도 있습니다. 유배지의 시간은 원래 느리게 흐르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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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 평단은 어떻게 평가했을까?
CGV 골든에그 지수는 97%입니다. 네이버 영화 관람객 평점도 9.0(2026.03.22 기준)으로 천만을 넘긴 영화치고 높은 편입니다. 한국 영화가 관객 평점 9점대를 유지하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관객 리뷰에서는 "역사물인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유해진이 이 영화를 살렸다", "박지훈이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줄 몰랐다" 같은 반응이 반복해서 보입니다.
평단의 평가는 다소 엇갈립니다. 안정적인 연출과 배우들의 앙상블에는 대체로 호평을 보내면서도, 구조적인 깊이에서는 한계를 짚는 시각도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다룬 방식에 대해서도 의견이 나뉩니다. 천만 영화에 대한 평단 반응이 늘 그렇듯, 대중성과 작품성 가운데 어디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집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특정 팬덤이나 프랜차이즈에 기대지 않고 이만한 관객을 모았습니다. 마블 영화도, 시리즈물도 아닌, 오로지 시나리오와 배우의 힘으로 승부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좋아했다면 무엇을 더 볼까?
왕과 사는 남자와 감정선이 닮은 한국 영화를 몇 편 소개합니다.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 왕의 대역이라는 설정의 역사 코미디 드라마로, 이병헌이 주연을 맡아 1232만 관객을 모았습니다. 비슷한 정서의 사극을 원한다면 가장 먼저 추천합니다.
사도(2015) | 조선 왕실의 비극을 정공법으로 다룬 사극으로, 유아인과 송강호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같은 왕실의 비극이지만 훨씬 무겁고 날카롭습니다.
나랏말싸미(2019) | 훈민정음 창제를 배경으로 한 사극입니다. 완성도 논란이 있었지만 역사 속 인물들의 관계에 집중한다는 점이 닮았습니다.
택시운전사(2017) | 유해진이 출연한 작품으로, 역사적 사건 속 평범한 인물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왕과 사는 남자와 정서적으로 가장 가까운 현대극입니다.
왕과 사는 남자는 역대 3위라는 기록보다 이야기가 먼저 기억될 영화입니다. 폐위된 어린 왕 곁에 아무 이유 없이 머물기로 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사극 특유의 진입 장벽이 높지 않고 감정이 흘러갈 곳도 분명합니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부담 없이 지나간다는 관객 반응도 많습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극장 상영이 끝나기 전에 보시길 추천합니다. 큰 화면에서 공간감이 한층 살아나는 영화입니다.